비가 온다 보일러 온도를 올리고 아내가 옷을 벗는다 거친 무게로 주렵주렵 구차한 살림살이를 처바른 아내의 몸뚱이에는 하얗게 실비듬이 피어 올랐다 힘겨운 세상살이에도 아내는 평온할 줄을 안다 알아들을 듯 말듯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아내의 노래 아내의 노랫소리가 나직 나직 샤워실 유리창을 지나 젖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들 때면 마당에 깔린 모난 돌들이 나붓나붓 제 살을 깎으며 울었다 수없이 밟히고 밟힌 생채기를 비로소 털어내며 울었다 아내는 안다 울 수 있는 건 눈물뿐이 아니라고 깊디깊은 한숨 그 한숨의 깊이로 고여온 바다 나직 나직 길게 뽑아내는 가락 속에 거센 파도 한없이 출렁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