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그리고..

죽음에게.. / 글, 오탁번

노을 그림자 2013. 5. 28. 22:06

 






한숨도 눈물도 다 지워진 나이
어두운 모퉁이길 돌아서면
문득 보이는 그대의 이마
여기쯤에 와서야
비로소 눈뜨는 나의 염치
정말 염치없네
미움도 사랑도 다 지워진 나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승의 침대맡
세상은 아직도 빛나고
불두덩이 가득 기어나온
오욕의 창자들
지나온 나의 생애 다 안다는 듯
거웃이 다 깍여진 빈 불두덩이
눈뜨고 차마 볼 수 없는
나의 생애
이 낭패감
이 절망감
죄짓고 싸다닌 저녁 골목
깨어진 가로등
방뇨했던 전신주
이제는 다 외우지도 못하는
마포 여의도 잠실 뚝섬의
전화번호들
욕설도 배설도 다 지워진 나이
빈 불두덩이로
그대에게 가야겠네..

죽음에게 .. - 오탁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