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그리고..

비망록 외../ 시, 문정희

노을 그림자 2016. 12. 25. 21:55





비망록.. /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숨죽여 홀로 운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몰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마지막처럼 고백한 적이 있다면

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을 두려워하며
꽃 속에 박힌 까아만 죽음을 비로소 알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이 뛰는 것을 당신께 고백한 적이 있다면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절박하게 허공을 두드리며
사랑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시, 문정희 


♬..얼굴 - 바이올린 연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