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그리고
전혜린 / 긴방황..
노을 그림자
2021. 11. 4. 23:49
![]()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아름다와서였다.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었고 그것은 아늑하고 따스한 기분이었다. 또 밤을 새고 공부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성적인 즐거움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다시 그것을 소유하고 싶다. 완전한 환희나 절망, 그 무엇이든지....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산다는 일, 호흡하고 말하고 미소할 수 있다는 일 귀중한 일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새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 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햇빛이 금빛으로 사치스럽게 그러나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다는 일,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 전혜린 - 긴방황 <♬..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패티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