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온 글 그리고 ..

스크랩] 치자꽃 설화/박규리

노을 그림자 2013. 12. 6. 11:23

 

 





치자꽃 설화../ 박규 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 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 서
한번도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야말 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 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낭송 : 김세원




천리향 사태.. / 박규리

글쎄 웬 아리동동한 냄새가 절집을 진동하여
차마 잠 못들고 뒤척이다가
어젯밤 산행(山行) 온 젊은 여자 둘
대체 그중 누가 나와 내 방 앞을 서성이나
젊은 사미승 참다못해 문을 여니
법당 뒤로 언뜻 검은 머리 숨는 게 아닌가
콩당콩당 뛰는 가슴 허리 춤에 잡아내리고
살금살금 법당 뒤로 뒤꿈치 들고 접어드니
바람처럼 돌담 밑으로 스며드는 아,
참을 수 없는……내……음……오호 라 거기라고,
거기서 기다린다고 이 번에는
헛기침으로 짐짓 기별까지 놓았는데
이 환.장.할.봄날 밤, 버선 꽃 가지 뒤로
그예 숨어 사라지다니, 기왕 이렇게 된 걸
피차 마음 다 흘린 걸
밤새 동쪽 종각에서 서쪽 아래 토 굴까지
남몰래 돌고 돌다가 저 아래 대밭까지 돌고 돌다가
새벽 도량석 칠 때까지 돌고 돌다가 온 산 다 깨도록 돌고돌다가
이제 오도가도 못해서 홀로 돌고 돌다가……천리향, 천리향이었다니…
…눈물 핑 돌아서



가을비.. / 박규리

무당 두 사람이 산기도를 왔다가
느닷없는 가을비에 떨며 서성이다가
해가 져 할수 없이 암자에 들어
스님, 마당에서라도 하룻밤 묵어 가면 안될라우?

꾸벅꾸벅 졸던 스님 뛰어나가
" 아이고, 어서 오소! 공양부터 드시오."
나에게 밥 차려 오라는 눈치다.

"저녁은 해드리겠으니 잠은 잘 곳 없으니
저 아래 마을 여관 가서 자시오"
나는 맵게 말을 끊었다

사람 좋던 스님
처마 끝으로 후득후득 비 긋는 소리
무심히 듣고 섰더니,
혼잣말인 듯 한숨인 듯...
"....따스한 방안에서
여지껏 비에 젖지 않은
자네가 마을 여관 가서 자고
한비에 온몸 젖은 사람들은
따스한 이불 피고 방안에서 주무시 게....."

빗물이 계곡을 덮쳤다.
가을비에 웬 천둥까지 내리는지...

그날 밤 , 나는 여인 둘과 한방 에 나란히 누웠다.
쓸쓸한 참회의 잠 이 고즈넉했다..





한해의 허리가 반반으로 접히고
계절도 반반으로 접히는 10월~~

갈 연빛  익어가는 자리마다
그대께서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하던 날의 기쁨으로
설레이며 마지막 인듯 귀하게 사랑하고
하얀 치자꽃 한송이처럼
향기롭고 행복한 가을 날이기 를 소원합니다.
성불하세요!



정효 합장_()_


계사년 구월 스무 여셋 아침녘 정효 꾸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