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그리고..

가을에는 ../ 최영미

노을 그림자 2022. 9. 17. 23:38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 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 구름도 새털 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개뭉개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때면,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가을에는,.- 최영미

♬.. Autumn Rose.. by Ernesto Corta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