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그리고..

사는이유 / 글, 최영미

노을 그림자 2012. 3. 8. 01:10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 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 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에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


사는이유 ..- 최영미

♬..이미배 - 애련 (愛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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